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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6.17 | 조회수 : 8212
제목 : 유럽연합의 확대, 기회인가 위기인가? | 글쓴이 : 전략홍보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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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선(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교수)
2004년 5월 1일자로 중동유럽 국가 8개국이 유럽연합 가입을 앞두고 있다. 동구국가들의 시장경제에로의 이행이 완결되었음을 의미하는 유럽연합의 동구확대는 유럽경제는 물론이고 세계경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글에서는 유럽연합의 동구확대가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와 문제점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5월 1일 중동유럽 8개국(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과 몰타, 사이프러스의 유럽연합 가입을 앞두고 브뤼셀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차있다. 10개국 가입으로 인해 유럽연합은 인구 4억 5천만 명, GDP 9조 달러, 세계무역의 19%를 차지하는 거대한 시장이자 생산지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까지 서유럽 내에서만 4차에 걸쳐 확대된 유럽연합이 이제 최초로 구 동구권 지역으로 확대를 앞두고 있다는 측면에서, 10개국의 가입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유럽연합의 가입이란 이들 10개국이 상품, 서비스, 자본,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허용되는 단일시장으로 편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통합은 여러 여건상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규회원국들은 얼마동안 분야별로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기존회원국들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2009년까지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거주용이 아닌 주택취득이나 농지 및 임야의 매입도 금지된다. 화폐통합은 2008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신규 가입한 10개국과 유럽연합과의 대외 교역은 커다란 변화를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유럽연합과 신규회원국 간에는 관세동맹이 발효되는데, 관세동맹이란 회원국간의 무관세뿐만 아니라 비회원국과의 대외무역에 있어 공동통상정책과 공동수입관세가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신규회원국들은 가입과 동시에 유럽연합 공동통상정책Common Commercial Policy의 적용을 받게 되며, 신규회원국들이 5월 1일까지 취했던 무역규제조치라든가 다른 나라와 체결한 무역협정은 자동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신규회원국이 이제는 유럽연합 역외공동관세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이 부과하는 관세율은 전반적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발트 3국의 경우는 현행관세가 유럽연합에 비해 낮기 때문에 관세인상이 불가피하며, 특히 공산품 수입관세가 없는 에스토니아의 경우에는 관세도입으로 인해 수입상품의 가격이 상당부분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의 확대는 하나의 변화로서 회원국은 물론 비회원국에게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신규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의 관세철폐로 인한 시장의 확대, 유럽연합과의 경제적 교류확대를 통한 기업 환경의 개선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밖에 서유럽으로부터의 자본조달이 확대될 것이며, 인프라 확충과 R&D 및 인적자원 개발과 관련해 유럽연합으로부터 재정지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2004-2006년에 신규회원국에게 제공될 유럽연합의 총 지원금은 무려 410억 유로에 달하는데, 이중 폴란드가 114억 유로, 헝가리가 28억 유로를 지원받을 계획이다. 직접투자 역시 증가할 것이며, 특히 유럽연합의 보호무역으로 인해 역내생산이 불가피한 아시아 기업들의 동구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최근 들어 유럽연합의 확대에 대비해 동구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는데, 2002년 현재 동구에 진출한 일본기업은 총 111개에 달한다.
국가별로 보면, 진출기업의 86%가 체코, 헝가리, 폴란드에 집중되어 있으며, 동구에 진출한 산업분야에서는 유럽시장에 대한 주요수출품목인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47.7%), 전기전자(17.1%)가 주종을 이룬다. 국내 기업들의 동구진출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에 생산설비 투자를 한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국타이어(체코 또는 슬로바키아), LG전자(폴란드), 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슬로바키아), SK케미칼(폴란드), 대우일렉트로닉스(폴란드) 등이 동구로 생산기지의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낮은 인건비라는 메리트로 인해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회원국들은 유럽연합 가입에 따른 급속한 임금상승으로 인해 이점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폴란드, 체코, 헝가리에서는 임금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으며, 환율에서도 자국통화가 평가절상됨으로써 저임금이라는 장점을 상실하고 있다. 2003년 현재 헝가리의 월평균 임금(총액기준)은 518유로, 폴란드는 578유로, 체코는 494유로였다. 그 결과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헝가리, 체코, 폴란드에 있는 생산거점을 폐쇄하거나 중국을 비롯한 타 지역으로 이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국가에서 임금상승으로 인한 외국기업의 설비투자 재이전은 유럽연합 가입과 함께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신규 회원국에서 유럽연합 가입이 대외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에게는 기회일 수 있지만 자본과 기술에서 모두 열위에 있는 중소기업에게는 중대한 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동구의 중소기업들은 신규가입과 동시에 축적된 기술과 튼튼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는 서구 기업과의 경쟁에 무방비상태로 내던져진 상태이다. 그밖에 중화학 분야에서 서유럽의 까다로운 환경기준 역시 신규회원국의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서구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선진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하며, 이는 가격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회원국들은 전체적으로 보아 유럽연합 가입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가입으로 인해 연평균 1.7-3.2%의 추가성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서유럽 산업계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을 기정사실화하고 활발하게 동유럽 진출을 추진해오고 있다. 한편 서구 기업들은 동유럽 국가들의 낮은 구매력으로 인해 이곳을 소비시장으로 보다는 저임금의 매력을 가진 생산기지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생산원가 경쟁이 치열한 제조업의 경우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동구 국가들은 매력적인 투자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치열한 경쟁과 포화상태에 이른 수요로 인해 고전하고 있는 통신 및 유통업체들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동구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구 기업들의 동구진출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신규회원국인 헝가리의 경우 제조업 전체매출의 70% 이상을 외국기업이 생산하고 있으며, 역시 신규회원국인 슬로바키아의 경우도 폴크스바겐과 US스틸이 수출의 15%,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업 분야에서도 동구권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1992년까지 43개에 불과하던 외국계 은행 수가 1999년에 141개로 늘어났다. 각 나라별로 외국계 은행의 수를 살펴보면, 헝가리의 경우 전체 39개의 은행 중 무려 27개, 폴란드는 77개 은행 중 39개, 체코는 42개 은행 중 17개가 외국계 은행이다. 게다가 자국 은행들 중 상당수가 서구 은행의 통제 하에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의 동구확대를 통해 손실보다는 이익을 더 많이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규회원국과의 경제력의 차이로 인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화폐통합이라든가 노동력의 대규모 유입 등은 일단 유보된 상태이기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의 동구확대로 인해 당장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확대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추구하는 유럽연합의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국내기업들의 시급한 대책마련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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