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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1.09 | 조회수 : 242

제목 : 대학의 유산, 한국외대 언어별 해당학과들의 열정 글쓴이 : 발전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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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총장 박철)는 1954년 창립자 김흥배 박사(사진)에 의해 설립됐다. 김 이사장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는 세계 각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기본이라는 신념으로 외국어 교육을 시행했다. 외국어 교육을 전담하는 대학을 국가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한국적 상황은 이렇게 시작됐다. 

영어,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5개 언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한 초창기 한국외국어대의 외국어 교육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교원을 초빙하는 일, 교재를 구하는 일, 어학 실습시설을 갖추는 일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특히 전쟁 직후에 '러시아어'처럼 적성 국가의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온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예민한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 했다.

외국어 교육 초창기에는 관련 학과 교수들이 유학 당시 가져온 책들이 '신주'처럼 귀중했다. "주한외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교재 한두 권을 구해오면 그것을 보물처럼 아끼고 등사기로 복사해 사용하기도 했다"라고 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런 시절이다보니 해당 언어의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사전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사전 역시 한두 권을 구해오면 여럿이서 돌려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한국외국어대 특수외국어사전의 탄생에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작동한다. 1970년 후반 김흥배 이사장은 "이런 상태에서는 외국어 교육의 내실을 기할 수 없다"라고 판단, 어떻게든 사전을 만들자고 구성원들을 독려했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세계 각국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인프라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전 편찬에 필요한 연구비 지원을 제의했다.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인도어 3종을 시작으로 베트남어, 이란어, 아랍어, 터키어 폴란드어, 루마니아어, 체코어, 유고어, 헝가리아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등 20여 종의 사전을 만들기로 하고 언어별로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 물론 출판은 한국외국어대 출판부에서 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전을 편찬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수동타자기로 타이핑을 해가며 원고를 작성할 수 있는 언어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타이핑도 할 수 없는 언어는 모든 원고를 손으로 일일이 종이에 써 넣어야 했다. 연구기간은 통상 3년에서 5년이었으나 약정된 기한 내에 원고를 완성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페르시아어-한국어사전』을 엮은 당시 이란어과 김정위 교수는 사전 머리말에 흥미로운 고백을 남기고 있다.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1987~1990년에는 아직 컴퓨터가 일반화돼 있지 않았고 원고는 모두 손으로 쓰여졌으므로 그 뭉치는 엄청났다. 그래서 1991년 한 해는 이 원고를 컴퓨터에 입력하는데 소요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어, 로마글자 및 한글을 동시에 표기할 수 있는 컴퓨터는 그 가격이 엄청나 구입할 수 없어서 결국 로마자와 한글만 입력되는 컴퓨터를 이용했다." 사전 편찬팀은 페르시아어 각 단어의 발음과 어원표시는 로마글자로, 내용설명은 한글로 쳐서 입력한 다음, 페르시아어-영어사전을 복사해 페르시아어 단어와 숙어를 가위로 오려내어 그 밑에 붙이는 고되고 지루한 작업을 했다. 특수외국어사전 대부분이 이러한 고되고 지루한 여정의 산물이다.  

작업 자체가 이렇게 고되고 지루했지만,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전문 연구자의 부재였다. 전문가가 부족하다보니 언어별 해당 학과의 거의 모든 교수와 외국인 교수, 심지어는 강사와 대학원생들까지 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연구기간을 넘겨 이름이 바뀐 교육부에서는 연구 기간을 준수하라는 독촉이 빗발치기도 했다.

연구 기간을 연장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원고가 완성됐으나 언어(문자)지원이 안 되니(글자가 없으니) 그 당시 제작 방식인 식자를 할 수가 없었다. 탁경구 한국외국어대 출판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문자를 만들고 제작처 직원들에게 기초적인 문자 교육을 시켜가며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저자가 지휘하고 감독하고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컴퓨터를 통한 워드프로세서에서 세계 각국의 다국어를 지원하니까 컴퓨터로 입력하고 편집해 출판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1980~1990년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84년 드디어 『터키어-한국어사전』을 필두로 『페르시아어-한국어사전』, 『힌디어-한국어사전』, 『인도네시아어-한국어사전』 등이 잇달아 출판되기 시작해 현재 30여 종에 이르렀다.

한국외국어대의 특수외국어사전은 아직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상품이다. 수요가 많지 않으니 상업성이 있을 수 없으며 상업성이 없으니 그 누구도 이 분야에 달려들지 않는다. 사전 제작에 참여한 교수들은 한결같이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다"라고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사전 편찬은 '승진심사'나 '연구업적'에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새한노사전』편찬에 참여했던 강덕수 교수(노어과)는 "사전을 만드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을 하는 것이다. 모델이 없기 때문에 매우 힘들게 마련이다. 오랜 시간 교수들 개인의 열정으로 빚어진 것인데도, 연구업적으로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 '사명감'만으로 사전을 만들라고 하면 아마 아무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네덜란드어-한국어사전』을 편찬한 김영중 교수(네덜란드어과) 역시 같은 말을 전한다. 특히 이 사전은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김영중 교수 혼자 작업한 것이어서 그 절절함이 더하다. 김 교수는 영어를 통해 다양한 세계언어를 접할 수 있지만, 이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사회가 특수외국어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지원을 확대했으면 좋겠다"라고 김 교수는 주문한다. 그 역시 승진, 연구업적 어디에도 '사전편찬'의 덕을 볼 수 없었다. 2007년부터 겨우 '논문 한 편'정도의 업적으로 인정해주는 게 지금 이 나라 대학 현실이다.

강덕수 교수는 사전편찬과 관련, 이를 한글 세계화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영중 교수는 "우리가 만든 사전은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이다. 지금 디지털시대로 전환했으니, 여기에 발맞춰 온라인 디지털 사전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나 기업이 이러한 작업의 실제 수혜자 아닌가. 각별한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다. 

산업화와 근대화, 보릿고개 넘는 일에 국가가 집중한 나머지 교육은 상당 부분 私學의 몫이 돼야 했던 '가난한' 대한민국이 아니다. 모든 학문의 공구서이자, 실생활의 투명한 소통 척도가 되는 사전, 한국외국어대가 이 사전 작업에 기여한 공로는 정당하게 평가돼야 한다.  최근에는 이 사전들이 외국인 100만 시대를 맞아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이주여성 등 다문화사회와의 의사소통 및 공동체 구현에도 필수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인도네시아어-한국어사전』은 인도네시아의 제일 큰 그라메디아출판사로 저작권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조만간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도 출판 판매될 예정이다. 수년 사이 이른바 한류바람이 불면서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물론 간단한 회화 몇 마디야 회화책 한 권이면 해결된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한국어를 좀더 깊이 있게 알고 배우고 싶은 외국인에게 사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외국어대는 이들 사전을 보완해 대학 설립 60주년에 맞춰 e- dictionary(스마트폰 용), web-dictionary(포탈 용), 전자사전 등 다양한 형태로 출판할 계획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사전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미래지향적으로 재편집하고 출간해 세계 어느 곳에 있는 누구라도 이를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국외국어대의 다부진 포부를 두고 '21세기 사회적 유산'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외국어사전 만들기까지_ 태-한사전, 한-태사전의 경우

2012년 01월 02일 (월) 13:20:52 차상호 한국외국어대 교수(태국어과)  editor@kyosu.net

한국외국어대가 출간한 외국어사전은 다양한 종수를 자랑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기여도가 높은 산물이다. 특히 국내서 활자를 취급할 수 없어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전 가운데 하나가 '태국어 사전'이다. 단어 하나하나 이미지를 만들어가면서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차상호 한국외대 교수(태국어과)의 글을 통해 사전의 탄생과 의미를 짚었다.  

태국어는 차이나-티베트(Chaina-Tibetan)어족에 속하는 차이나-타이어파로, 이는  중국 제 방언과 타이(Thai) 제 방언으로 대별한다. 타이어는 라오스어(Laos)와 샴(Siam)어로 분류하는데, 샴어는 방콕을 중심으로 중부지역에서 태국어의 표준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이 좁은 의미의 태국어이다. 태국어는 대부분 단음절어로서의 고립어이며, 44개의 자음 문자와 32개의 모음문자 그리고 5개의 성조어(Tone Language) 및 기타부호로 돼 있다.
 
 한국에서 태국어 교육이 시작된지 이제 45년이 넘었다. 1966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태국어과가 설립되면서 태국어와 태국학이 대학 정규과정에서 학문적인 뿌리가 내리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태국어 학습과 연구를 위해 교재가 개발되었지만 사전이 없었던 관계로 불가피하게 태영사전(Thai-English Dict.)과 영태사전(English-Thai Dict.)에 의존하다보니 불편함과 많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태국어-한국어 사전의 간행은 태국어와 태국학은 물론 태국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전문적인 인적 자원과 예산 확보가 관건이었다. 사전 편찬 작업이 매우 힘든 작업일 뿐만 아니라 재원 마련이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중 1986년에 이르러 당시 교육부와 한국외국어대가 태국어-한국어 사전 편찬을 위한 소정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때 특수 외국어중 러시아어-한국어, 터키어-한국어도 함께 지원을 받게 됐다.

이로써 사전편찬을 기획해 착수했는데, 소액의 한정된 예산과 통화팽창사태로 인해 재정적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특수문자인 태국어 활자를 취급할 수 있는 전문요원이 없어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원래부터 사전 편찬을 위한 연구활동비도 책정할 수 없었지만, 기본적인 예산부족으로 편찬위원 모두가 각기 경비를 갹출하면서 희생봉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전문요원 없어 숱한 어려움 겪어

이 태국어-한국어 사전은 표제어 3만2천 단어와 파생어 2만8천 단어를 포함하여 6만여 단어를 수록하도록 계획했다. 처음부터 사전편찬을 위해 각종 『泰英辭典』, 『泰日辭典』, 『泰漢辭典』및 태국에서 간행된『泰泰辭典』등을 면밀히 조사 검토해 그 중에서 다께지로 도미다의 『泰日辭典』의 표제어를 모델로 선정해 작업했다.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 최창성 교수가 편찬위원장이 되고 태국어과 교수인 이교충, 김영애, 차상호, 이한우 교수가 편찬위원이 됐다. 이병도, 최난옥, 윤경원, 최은희 교수가 편집과 교정을 담당했다. 교정과 편집에 있어 많은 오류와 온갖 어려움 끝에 1993년 8월에야 7년에 걸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보완작업을 계속해 2000년에 개정판을 낸 바 있으며, 2008년에 이르러 시대조류에 따른 신조어, 부록 등을 추가하는 개정증보판을 내기로 해 마침 새로운 컴퓨터 활자가 개발돼 한국외대 교환교수로 초빙한 태국의 쏭클라대 한국어학과의 빠릿 웡타나쎈 교수 주도하에 태국어 입력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오류를 발견하게 되면서 2009년에는 태국 씬라빠껀대에 싸이와룬 니밋너이 교수가 한국외대 교환교수로 부임해서 사전 전부를 또다시 점검해 탈자, 오자를  바로잡았다. 송인서 강원대 교수가 한자와 한국어의 오류를 잡아주어 2010년 8월에 개정 증보판을 낼 수 있었다.

 “편찬위원들은 주말과 방학도 잊은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연구실적도 못냈고, 연구비 수혜도 없었다.

학자로서의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다.”

태국어-한국어사전 작업이 끝나던 해인 1993년에 또다시 교육부 학술연구사업 계획(외국어사전편찬)에 따라 한국어-태국어사전 편찬계획을 수립하게 됐다. 이 역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국어-한국어사전 편찬보다 훨씬 더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이고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예산부족의 재원을 마련하기위해 국내외의 여러 기관과 단체 그리고 태국어과 동문들에게까지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노력 결과 태국 大學省으로부터 사전편찬 전담 인력의 지원을 약속받고, 태국 수상실 산하 경제기술과와 한국외국어대의 학술협정교류대학인 태국 국립 부라파대의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주한태국대사관 협조로 태국 정부의 재정 지원도 받았다.

사전편찬에 관한 작업은 당초에 표제어와 파생어를 포함해 5만5천 단어를 목표로 하고 집필기간은 5년을 계획했으나, 예산 부족과 인적 자원 부족으로 도저히 진행해 나갈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2000년에 초고가 완성됐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초고 첫 장에서부터 한국인 교수와 태국인 교수가 일대일로 표제어를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5만여 표제어를 일일이 점검하는 일이 보통 방대한 일이 아니었다. 주말과 방학을 반납하며 3년여에 걸쳐 교정을 마친 편집위원들은 자체 평가를 거쳐 다시 한 번 점검이 필요하다고 인식을 같이 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인 편찬위원 2인과 태국인 편찬위원 1인이 한 조가 돼 재교정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의 교정 작업을 마친 원고를 마지막 단계로 한국인 1인과 태국인 1인이 최종으로 감수했다.

  사전 편찬 과정에서 편찬위원들이 겪은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3년의 짧지 않은 기간에 편찬위원들은 주말과 방학도 잊은 채, 열악한 환경 하에 희생을 하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반 교수들처럼 학술연구 활동을 할 시간도 없게 되다보니 연구실적도 없을뿐더러 학술연구비의 수혜도 없었다. 물론 사전편찬 연구활동비도 전무했는데, 이는 아마도 오로지 학자로서의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논문도 잊은채 사전편찬에 몰두한 교수들

  사전 편찬 위원으로는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의 김영애, 윤경원, 이교충, 이병도, 이한우, 정환승, 차상호, 최난옥, 최은희, 최창성 교수가 참여했다. 태국인 편찬위원으로는 한국외대 초빙교수로 온 부라파대학교(Burapa Univ.)의 탓싸니 탄따와닛, 쑨타리 쿤나짝, 욤도이 펭퐁싸, 씨나카린 위롯 대학교(Srinakharinwirot Univ.)의 찐따나 풋따멧따, 악카라 분팁, 파이분 두엉짠, 반폿 씨리차이, 씬라빠껀 대학교(Silpakorn Univ.)의 암펀 깨우쑤완, 풋타찻 뽀티반, 쏭클라 대학교(Songkhra Univ.)의 첫차이 우돔판, 빠릿 웡타나쎈 교수가 수고를 했다. 태국인 편찬위원은 해마다 한국외대 태국어과에 교환교수로 초빙한 교수들과 태국정부의 배려로 참여한 분들이다. 특히 태국어 교정과 최종 감수에 최창성 교수, 탓싸니 탄따와닛 교수, 풋타찻 뽀티반 교수가 각별히 수고를 했다. 또한 교정 및 컴퓨터 입력에는 쏭클라 대학교 한국어과의 빠릿 웡타나쎈 교수의 노고가 컸다. 아울러 한국외대 태국어과와 태국 쏭클라 대학교의 한국어과 학생들의 고생도 많았다.

  외국어 사전 편찬 계획을 한 교육인적자원부와 일찍부터 글로벌 경쟁시대를 리드하고 있는 대학측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사전편찬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특수 문자인 태국어의 편집과 출판에 가장 노고가 컸던 한국외대 출판부를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의 전 교수진과 태국인 교환교수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해 낸 두 사전의 편찬에 따라 한국 대학과정에서 태국어문학과 태국학, 그리고 태국에서의 한국어문학 및 한국학을 비롯한 제반 학문의 발전을 더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우리나라 기업의 태국 진출, 그리고 태국 기업과 수만 명의 태국인 근로자의 한국 진출과 더불어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최근의 韓流와 泰流의 확산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효과가 더욱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9월에는 태국 내 고등학교에 정규과목으로 한국어가 채택되어 한국어 교원 54명이 파견되는 등 태국의 대학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와 20개의 사설어학원에서도 한국어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인쇄매체의 사전 출간으로 사전 이용이 편리하게 됐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 출판부에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디지털 사전이 등장하게 되면  학문발전의 가속화와 더불어 국제화와 지식정보화 시대로 도약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차상호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
 
필자는 동국대에서 태국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한국태국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장으로 있다. 지은 책에는 『태국 현대민주정치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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